2025 노벨 물리학상 — 거시적 양자 터널링을 입증한 세 과학자
서론: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손에 잡히는 양자 세계’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존 클라크(John Clarke), 미셸 드보레(Michel H. Devoret), 존 마르티니스(John M. Martinis) 세 과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전기 회로에서의 거시적 양자 터널링(macroscopic quantum mechanical tunnelling)과 에너지 양자화(energy quantisation)를 발견한 공로”로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 연구는 단순한 실험적 발견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얼마나 멀리 확장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리학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기존에는 원자나 전자처럼 미시적인 입자에서만 양자 현상이 나타난다고 여겼지만, 이번 연구는 그 경계를 깨뜨렸습니다. 세 과학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기 회로 수준에서도 양자역학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이로써 양자역학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칙’이 아닌, 현실적인 기술과 연결된 과학의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발견은 인류가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의 다리를 놓는 첫 걸음을 내딛게 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들의 연구는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오늘날의 양자컴퓨터, 양자센서, 양자통신 기술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 양자 터널링 — 입자가 벽을 통과하는 기적, 이론에서 실험으로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확률의 세계입니다. 전통적인 물리학에서는 입자가 에너지가 부족하면 장벽을 절대 통과할 수 없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아주 작은 확률로 장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ling) 현상입니다.
1928년,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George Gamow)는 원자핵이 방출되는 알파 붕괴(alpha decay)를 설명하면서 이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후 이 이론은 반도체의 전자 이동, 핵융합 반응, 스캐닝터널현미경(STM)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간접적으로 관찰되었지만, ‘사람이 볼 수 있는 크기’의 시스템에서는 전혀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못했습니다.
이 한계를 깨뜨린 것이 바로 클라크, 드보레, 마르티니스의 실험입니다. 그들은 초전도체 두 층을 얇은 절연층으로 분리한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을 이용했습니다. 이 장치는 전자쌍(쿠퍼쌍, Cooper pairs)이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며, 하나의 거시적 양자 상태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전자쌍이 수십억 개 단위로 묶여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입자처럼 행동하는 이 회로는 양자역학의 ‘파동성’이 거시적 규모에서도 유지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초전도 회로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다가도, 외부 자극이 특정 임계값을 넘으면 전류가 양자적으로 장벽을 뛰어넘어 전압이 생기는 상태로 전이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기적 잡음이 아니라, 양자 상태의 확률적 붕괴에 의해 발생한 현상이었으며, 연구진은 이를 통해 ‘전류가 장벽을 통과하는 거시적 양자 터널링’을 관측했습니다. 미시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터널링이 수십억 개의 전자가 동시에 동일한 파동함수를 공유한 상태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 실험은 물리학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연구진은 온도와 자장에 따른 터널링 확률 변화를 세밀히 측정하며, 양자역학적 계산과 실험값이 일치함을 확인했습니다. 이 결과는 “거시적 스케일에서도 슈뢰딩거 방정식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이는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의 경계를 사실상 허물어뜨리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파급력은 현재의 초전도 기술과도 직결됩니다. 조셉슨 접합은 오늘날 SQUID(초전도 양자간섭장치) 센서, 양자컴퓨터의 회로, 고감도 자력계 등에 응용되고 있으며, 모든 기반에는 이들이 입증한 ‘거시적 양자 터널링’의 원리가 자리합니다.
결국 이 발견은 단순히 이론의 검증을 넘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서도 양자역학이 성립함을 보여주며 물리학의 영역을 한층 확장시킨 역사적 실험이 되었습니다.
2. 에너지의 ‘계단’ — 회로에서 드러난 양자화의 증거
클라크 연구팀은 터널링 현상뿐 아니라, 전기 회로 자체가 에너지를 불연속적으로 흡수하고 방출한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이른바 에너지 양자화(energy quantisation) 현상입니다.
이 발견의 의의는 단순한 실험적 관찰을 넘어섭니다. 초전도 회로에 마이크로파를 주입했을 때, 회로가 모든 주파수를 흡수하지 않고 오직 특정한 주파수에서만 반응했다는 점은 기존의 고전 전자공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회로의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하지 않고, 일정한 ‘계단식 단계(quantised levels)’로만 변화한다는 뜻이었고, 이 계단의 폭과 간격은 이론적으로 예측된 양자 에너지 준위와 일치했습니다. 그 결과 전기 회로 전체가 마치 하나의 ‘양자화된 진동자(quantised oscillator)’처럼 작동함이 입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회로는 전자 하나가 아니라 수십억 개의 전자쌍이 하나의 ‘거대한 원자(giant atom)’처럼 행동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들은 초전도 상태에서 전류의 위상과 진폭이 양자적으로 얽혀 있음을 관찰했고, 이를 통해 회로가 바닥상태(ground state)와 들뜬상태(excited state) 사이를 오가는 양자 전이(quantum transition)를 직접 관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마이크로파 주파수에서만 전류의 응답이 강화되는 현상이 포착되었고, 이는 전자가 아닌 전체 회로가 ‘양자 점프’를 한다는 결정적 증거로 해석되었습니다.
클라크와 드보레, 마르티니스는 이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를 더욱 세밀히 분석하기 위해 온도, 자기장, 전류 밀도를 조절하며 반복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회로의 결맞음(coherence) 유지 시간이 미세한 잡음이나 열적 섭동에 의해 변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즉, 회로의 결맞음 시간이 길수록 양자 상태가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외부 간섭이 줄어들수록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의 분리도가 명확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결과는 훗날 양자컴퓨터에서 큐비트의 안정성(quantum coherence time)을 결정하는 핵심 물리량의 개념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 실험은 고전 전자회로와 양자물리학 사이의 간극을 메운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전까지 전기 회로는 완전히 고전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으나, 이 연구는 회로 자체가 하나의 양자 시스템으로 설계되고 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양자 전자공학(quantum electronics)’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영역을 열었습니다.
그 후 마르티니스는 이 원리를 기반으로 구글(Google)의 초전도 큐비트 연구를 주도하여, 2019년 세계 최초의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 실험을 실현했습니다. 드보레는 양자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양자 오류 수정(quantum error correction) 기술을 이론적으로 발전시켜, 실제 양자컴퓨터의 신뢰성과 확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결국 이들이 발견한 에너지 양자화는 단순히 회로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양자컴퓨터와 양자센서 설계 철학의 근본 원리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의 기초 연구는 40년이 지난 오늘날, 양자산업의 토대가 되는 혁신적 기술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 실험이 바꾼 패러다임 —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현실로
세 과학자의 연구는 이론 물리학자 앤서니 레게트(Anthony Leggett)가 1980년대 제시한 “거시적 양자 터널링(Macroscopic Quantum Tunnelling, MQT)” 개념의 실험적 검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의 의미는 단순한 이론의 확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 과학자는 물리학이 다루는 스케일의 경계를 완전히 재정의하며, 고전적 직관이 무너지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레게트는 “양자역학이 실제로 거시적 시스템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평생 탐구했고, 그 공로로 20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거시적 양자 일관성(macroscopic quantum coherence)’이라는 개념을 통해, 작은 입자뿐 아니라 수십억 개의 입자가 얽혀 있을 때도 양자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를 실험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클라크와 그의 동료들은 이 질문에 실험으로 답했습니다. 그들의 시스템에서는 수십억 개의 전자쌍이 하나의 거대한 파동함수를 형성한 채, 두 가지 상태(전압이 없는 상태와 있는 상태) 사이를 오갔습니다. 이때 전자쌍 전체가 동시에 두 상태를 점유하는 ‘거시적 중첩(macroscopic superposition)’이 발생했으며, 이는 물리학적으로 ‘거대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두 상태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실험 장비의 전압과 전류 파형이 동시에 두 가지 값을 나타내는 순간, 연구자들은 미시적 확률의 세계가 눈앞의 전기 회로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는 양자역학의 ‘중첩(superposition)’ 개념이 미시적 입자를 넘어, 거시적 실험장비 수준에서도 성립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실험은 양자 상태가 붕괴되거나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할 때 나타나는 탈결맞음(decoherence)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양자컴퓨터의 오작동 원인을 설명하고, 양자정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설계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거시적 양자 상태는 전자기 회로를 통해 인공적으로 제어 가능한 ‘인공 원자(artificial atom)’로 발전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초전도 회로의 크기, 온도, 전류 세기를 정밀하게 조정함으로써 양자상태의 유지 시간과 전이 확률을 제어할 수 있음을 보였고, 이로써 ‘인공 원자’는 현실적인 연구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이 개념은 양자센서, 양자통신, 양자메트롤로지(quantum metrology)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응용되고 있습니다.
즉, 이 연구는 단순히 양자역학의 확장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 ‘거시적 양자 세계’의 실험적 문을 연 사건이었습니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논의로 여겨졌던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실험실의 현실로 등장함으로써, 현대 과학은 이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제어할 수 있는 양자 현실의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앤서니 레게트(Anthony Leggett)가 1980년대 제시한 “거시적 양자 터널링(Macroscopic Quantum Tunnelling, MQT)” 개념의 실험적 검증이기도 했습니다. 레게트는 “양자역학이 실제로 거시적 시스템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평생 탐구했고, 그 공로로 20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클라크와 그의 동료들은 이 질문에 실험으로 답했습니다. 그들의 시스템에서는 수십억 개의 전자쌍이 하나의 거대한 파동함수를 형성한 채, 두 가지 상태(전압이 없는 상태와 있는 상태) 사이를 오갔습니다. 이는 물리학적으로 ‘거대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두 상태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양자역학의 ‘중첩(superposition)’ 개념이 미시적 입자를 넘어, 거시적 실험장비 수준에서도 성립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거시적 양자 상태는 전자기 회로를 통해 인공적으로 제어 가능한 ‘인공 원자(artificial atom)’로 진화했습니다. 현재 이 개념은 양자센서, 양자통신, 양자메트롤로지(quantum metrology)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결론: 양자 세계와 인간 세계를 잇는 다리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20세기 초부터 이어진 물리학의 근본적인 질문 — “양자역학의 법칙은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 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세 과학자는 미시 세계의 법칙이 거시 세계에서도 유효함을 실험으로 입증하며, 물리학의 경계를 확장했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단순한 이론 검증을 넘어 현대 양자공학(quantum engineering)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오늘날의 초전도 큐비트, 양자센서, 양자암호, 양자시계 등 다양한 응용 기술이 바로 이 실험에서 출발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연구는 과학적 호기심과 실용적 기술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젊은 연구자들에게 ‘기초 과학이 미래 산업의 씨앗이 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결국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어, 손끝으로 만질 수 있는 양자 세계로 들어선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 상은 과학사에서 ‘양자역학의 제2막’을 연 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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