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정말 ‘검증’할 수 있을까: XAI의 약속, 한계, 그리고 신뢰의 조건
서론
인공지능(AI)을 실제 업무와 서비스에 투입하려는 기업과 기관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델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많은 조직이 망설입니다. 특히 블랙박스 모델이라 불리는 딥러닝 계열 모델은 입력과 출력은 알 수 있지만, 그 내부 과정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즉, 어떤 데이터가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어도,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설명이 불가능하다면 검증도 어렵고, 검증이 어렵다면 신뢰 역시 구축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식에서 등장한 개념이 설명가능한 AI(XAI, Explainable AI)입니다. XAI는 모델이 내린 결정을 사람에게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내어 신뢰·책임·규제 준수를 돕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설명”이 곧바로 “신뢰”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설명이 사용자에게 잘못된 확신을 주거나, 오히려 혼란과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최신 연구와 실제 사례를 통해, AI를 정말 ‘검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XAI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 1 | 블랙박스의 신뢰 딜레마: 왜 설명이 중요한가
배경 설명
의료·금융·공공과 같이 사회적 파급력이 큰 분야에서 AI는 아무리 높은 정확도를 자랑해도 근거를 설명하지 못하면 채택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해당 판단을 법적·윤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기관이 AI 도입 시 모델 성능뿐만 아니라 설명가능성과 감사 가능성을 주요 요건으로 삼습니다. 또한 설명은 단순히 결과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법적 책임을 가능케 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구체적인 사례
- IBM의 Watson for Oncology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입니다. 암 치료 권고안을 제시하면서도 왜 그런 권고를 내렸는지 설명하지 못해 의사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병원에서는 Watson이 제시한 권고가 현지 가이드라인이나 환자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결국 채택이 중단되었습니다. Watson 사례는 블랙박스 모델이 의료와 같은 고위험 영역에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금융권에서도 설명 불가능한 리스크 모델은 내부 감사나 규제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이사회와 감독 기관은 결과가 아니라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기관은 단순한 성능지표보다는 모델의 근거 제시 능력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 2022년 Pew Research Center 조사에서도 미국인의 45%가 AI의 미래에 대해 기대와 동시에 불안을 갖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 불안의 핵심은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알 수 없는” 블랙박스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즉, 설명은 사회 전체의 수용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분석
블랙박스 모델의 신뢰 문제는 단순히 정확도 대 설명성의 균형 논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설명 불가 → 검증 불가 → 책임 불가의 고리가 이어지는 한, 실제 도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설명은 기술적 부가 기능이 아니라 법적·윤리적 방패막으로서 요구됩니다. 결국 XAI의 목적은 단순히 사용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검증 가능성과 책임 추적성을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한 줄 결론: 고위험 분야에서 설명은 선택이 아니라 도입의 전제조건입니다.
본론 2 | 설명의 역설: XAI가 낳는 과신과 오해
배경 설명
XAI는 블랙박스를 열어보려는 시도이지만, 설명이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명의 방식과 맥락에 따라 사용자가 과신하거나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숫자나 시각화 자료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원인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명은 결국 사용자가 이해하는 틀을 통해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잘못된 프레임을 제공하면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
- 연구에 따르면 숫자 기반 설명(예: 중요도 점수, 확률 값)은 사용자가 이해하지 못해도 오히려 “정확해 보인다”는 인상을 줘서 과도한 신뢰를 유발합니다. 사용자가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숫자 그 자체가 권위처럼 작용하는 것입니다.
- 하이라이트(heatmap)와 특징 중요도 그래프는 모델이 무엇을 중시했는지 대략 보여줄 뿐,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용자가 이를 원인으로 착각합니다. 이는 실제 원인과 단순히 시각적 강조 요소를 혼동하는 사례로 이어집니다.
- 일부 사후(post-hoc) 설명기법은 입력 데이터를 살짝 교란하면 설명 결과가 크게 달라질 정도로 불안정합니다. 심지어 조작을 통해 편향을 가리거나,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설명 자체가 검증되지 않으면 오히려 허위의 신뢰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습니다.
- 심리학 연구에서는 설명이 제시되면 사람들은 그 설명의 타당성을 검증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보고되었습니다. 이는 “설명 = 진실”이라는 착시 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분석
설명은 곧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사용자와 모델 사이의 해석 인터페이스입니다. 따라서 (1) 설명에는 항상 불확실성을 명시하고, (2) 사용자가 성찰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3) 설명이 실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해야 합니다. 특히 조직은 설명을 ‘신뢰 자동 발생 장치’로 착각하지 말고, 그 한계와 위험을 병행 관리해야 합니다. 설명에 과신하는 순간 책임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 줄 결론: 설명은 신뢰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검증 가능한 설명과 사용자의 성찰적 해석이 함께 필요합니다.
본론 3 | “검증 가능한 AI”를 위한 현실적 설계
배경 설명
현실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완벽히 설명 가능한 모델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명성을 높이면 모델 성능이 저하될 수 있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블랙박스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설명가능성”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고, 다양한 검증 수단을 결합하는 전략입니다. 여기서 검증이란 단순히 설명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설명 불가능성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장치들을 총망라하는 것을 뜻합니다.
구체적인 사례
- 내재적 해석가능 모델: 규칙 기반 모델이나 점수화 모델처럼 처음부터 설명 가능한 방식을 우선 고려합니다. 의료·법률과 같은 고위험 영역에서는 특히 이런 접근이 권장됩니다. 실제로 일부 법률 서비스 AI는 규칙 기반 접근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책임 추적성을 확보했습니다.
- 삼중 방어선 전략: (1) 사전 단계에서 데이터의 편향과 오류를 교정하고, (2) 모델 내 단계에서 공정성과 안전 제약을 직접 학습 목표에 반영하며, (3) 사후 단계에서 출력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감사 대시보드를 운영합니다. 이를 통해 설명성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다층적 안전망을 마련합니다.
- 검증 기법 도입: 카운터팩추얼 테스트(입력을 바꿨을 때 결과가 합리적으로 바뀌는지 확인), 데이터 슬라이싱(특정 집단별 성능 격차 확인), 컨셉 기반 테스트(금지된 속성에 의존하는지 점검) 등을 정례화합니다. 이러한 검증 기법은 설명 자체가 주지 못하는 신뢰를 대신 제공하는 기능을 합니다.
- 운영 모니터링: 데이터 분포 변화를 감시하고, 성능 저하나 편향 재발을 조기에 탐지하는 체계를 갖춥니다. 이를 통해 설명이 부족하더라도 실제 운영 단계에서의 위험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 인간 참여형 검증: 인간 전문가가 주기적으로 AI의 판단을 검토하는 체계도 필수적입니다. 이를 통해 기계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분석
핵심은 설명성을 단일 스위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검증 가능성을 높이는 다양한 설계 레버를 함께 다루는 것입니다. 즉, (a) 문제 위험도에 맞는 모델 선택, (b) 전 수명주기에 걸친 감사 가능성, (c) 사용자의 성찰적 참여를 동시에 확보해야 합니다. 또한 기술적 장치와 조직적 장치가 함께 결합될 때 진정한 의미의 검증 가능한 AI가 완성됩니다. 이런 조합이 있을 때 비로소 “AI를 검증한다”는 말이 현실화됩니다.
한 줄 결론: 검증 가능한 AI는 모델 선택·데이터 관리·운영 모니터링·인간 참여의 네 박자가 어우러져야 실현됩니다.
결론
AI를 ‘검증’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확한 결과를 내는지 확인하는 것을 넘어, 결정 과정을 설명·감사·재현할 수 있는지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설명은 만능이 아니며, 그 자체가 과신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은 해석 가능한 모델의 우선 적용, 삼중 방어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체계적 검증 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독자와 실무자에게 제안합니다. 첫째, “이 모델은 무엇을 왜 배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되, 설명의 한계도 함께 인식하세요. 둘째, 도입 전 데이터 검증 절차를 제도화하세요. 셋째, 운영 단계에서는 설명 교육·경보 체계·출력 감시를 강화하세요. 결국 검증 가능한 AI는 한 번의 설명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다층적인 검증 체계에서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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